딸 FM과의 이야기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경상도에 위치한 한동대학교에 입학하여 글로벌 심리상담을 전공했다. 졸업 후다시 우간다로 돌아와 10년간 사역에 전념했다. 그 후 또다시 한국의 횃불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를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무려 7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그 기간 동안 아내는 홀로 여섯 자녀를책임졌고, 아버지의 빈자리는 자녀들의 마음에 상처로 남았다.
특히 딸 FM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어머니와 큰 갈등을 겪게 되었다. 나는 졸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딸이 이미 집을 떠나 친구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딸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이렇게 첫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너를 집을 떠나게 했는지 몹시 궁금하구나. 무엇이 너를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을까?” 이에 나의 사랑스러운 딸은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했다. “아빠, 솔직히 말하면 엄마가 문제예요. 엄마는 저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늘 저를 판단하고 비난만 해요.”
울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한 그 말 속에는 상처받은 아이의 절규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러한 딸의모습을 보면서 먼저 안아주고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던지신 한 가지 질문을 똑같이 던져보았다. “너는 엄마가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그런데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이 질문은 ‘가르침’이 아니라 존재를 다시 품는 질문이다.
예수님께서도 관계를 깨뜨린 아담을 부를 때 “왜?”보다는 “어디에 있느냐?”를 물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또한 사랑스런 딸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이다. 다시 말해, 회개나 훈계의 질문이 아니라, 사랑을다시 연결시키는 회복의 질문이었던 것이다. 이에 딸은 잠시 눈물을 흘리면서 차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기시작했다. “사실 저도 엄마를 존중하지 않았어요. 제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요.” 이러한 그의 고백은 바로 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그 이후 나는 아내와도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던 중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무엇이 FM으로하여금 그렇게 서운함을 느끼게 만들었을까?” 이에 아내는 처음에는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점차 자신이 딸을 너무 엄격하게 대하고 판단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 둘을 함께 만나게 한 자리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딸은 무릎을 꿇고 엄마에게 용서를 구했다. 엄마는 눈물로 딸을 끌어안으며 함께 울었다. 나는 그 순간 그들을 위해 성령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 자리에서 그동안 깨졌던 가정에 치유와 화해의 은혜가 가득하게 되었고, 사랑과 평안이 모든 이들을 회복시키게 되었다.
그 후 딸과 어머니의 관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용서와 사랑으로 관계를 다시 세운 것이다. 이렇게 짧지만 강한 성경적 코칭의 힘은 가정 안에서조차 분열을 화해로 바꾸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엠마와 재키 가정 이야기
엠마(Emma)와 그의 아내 재키(Jacky)는 여섯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지만, 2025년 8월에야 비로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사실 그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함께 살아오며 사실혼 관계 속에서 가정을 꾸려왔다. 우리 교회가 지역 가정을 방문하며 복음을 전하던 어느 날, 우리는 엠마와 재키의 소박한 집을 찾아가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복음을 나누었다. 그날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요 구주로 영접했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고백했다.
그 후 엠마와 재키는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의 길은 서로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재키는 매주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하고, 각종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빠른 성장을 보였다. 반면엠마는 여러 이유로 자주 예배를 빠지곤 했는데, 어떤 때는 몇 달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기도 했다. 나는 목회자로서 엠마에게 혹시 어떠한 이유가 있는지를 물었고, 그는 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안정적인 직업이 없는 상황에서 여섯 자녀를 책임져야 하는 그의 부담은 매우 컸다.
그러나 재키의 신앙은 오히려 그 어려움 속에서 더욱 단단히 다져졌다. 그녀는 기도의 은사와 찬양의 달란트를 지닌 자매였다. 처음에는 조용히 교회 모임에 참석했으나 곧 중보기도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고, 이후에는 찬양과 경배를 인도하는 리더로 세워졌다. 재키는 성실하고 겸손했으며,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모든 사역에서 드러났다.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그녀를 보며 믿음의 본을 삼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엠마의 인생에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그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서 형제들과 심각한갈등이 생겼고, 결국 그는 가족과 함께 그 땅에서 쫓겨났다. 삶의 터전을 잃은 그들에게 마땅한 거처는 없었다. 나는 목회자로서 이 가정을 돕기 위해 교회가 짓고 있던 미완성 강당을 제공해주었다. 그곳은 아직 콘크리트바닥도 완성되지 않았고, 창문에는 유리조차 끼워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갈 곳 없는 엠마와 재키는 그곳을 받아들이고 여섯 자녀와 함께 3년 동안 생활했다.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재키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고, 여전히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어느 날 재키는 눈물로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정말 하나님은 공평하신가요?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라며 절망을 토로했다. 알고 보니 엠마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부부를 불러 상담 자리를 마련했는데, 엠마는 처음에는 부인했고, 재키는 울며 배신의 아픔을 호소했다. 두 사람은 서로분노와 상처 속에 있었고, 자녀들과 교회 공동체 역시 그 긴장감 속에서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때 내가 의지할 수 있었던 도구가 바로 성경적 코칭이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충고하거나지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질문을 선택했다. “형제여,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정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리고당신의 선택이 아내와 자녀들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다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을 받은 엠마는 닫혔던 그 마음에 회계의 영을 받아들여 점차 마음을 열고, 스스로 자신의 불신실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재키에게 큰 상처를 주었음을 깨닫고 눈물로 회개했다. 그리고 정식으로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2025년 8월, 하나님 앞에서의 혼인 서약으로 이루어졌다. 오늘 엠마와 재키는 자녀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고 있으며, 신앙과 가정이 회복된 증거로 교회 안팎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간증이 되고 있다.
이러한 순간들을 기억하고 다시 깨닫는 것이 있다. 그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수업이었던것이다. 코칭은 단순히 말을 잘 이끌어내는 기술이 아니라, 사랑을 다시 흐르게 하는 은혜의 통로임을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질문을 던졌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질문하셨던 것이다. “너희는 서로를 사랑하느냐?” 이러한 그분의 음성이 우리의 대화 속에 오셨던 것이다.
결국 한 위대한 질문이 내 딸의 마음을 열었고, 아내의 마음을 부드럽게 했으며, 엠마의 회개를 이끌었고, 재키의 아팠던 마음을 치유한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코칭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관계 회복’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질문은 여전히 오늘도 우리의 중심에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확신한다. 사랑으로 던진 질문 하나가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