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벽녘 바깥 공기가 제법 차갑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며 각자의 일터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아마 많은 영적 리더들 역시 새벽 제단을 쌓으며, 잠자는 영혼들을 깨우고 주님을 만나기 위해 매일 새벽을 깨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주님의 제자라 불리는 우리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재촉하지 않고, 게으름에 빠져 그저 한자리에 서성이고만 있다면 주님은 우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실까?

제자리에 '서 있다'는 건 단순히 정지해 있거나 일을 쉬고 있다는 뜻 이상인 것 같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앞으로 전진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농부가 밭을 갈기 위해 새벽부터 쟁기와 낫을 갈고 준비하듯,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품은 영적 리더라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늘 주님을 찾고 문을 두드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하고 감사하는 법조차 잊어버린 이를 과연 어떤 자리에 쓸 수 있겠는가. 천국의 비밀을 맡은 자라면 하나님 나라를 향해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야 하고, 나를 향해 웃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힘차게 달려가야 한다. 그저 우뚝 서서 시간만 보내고 있다면, 그를 과연 참된 하나님의 일꾼이라 말할 수 있을까?
특히 제자의 길을 달려갈 때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 성경 속 웃사의 이야기를 한번 떠올려보자. "법궤를 어깨에 메고 오라"는 다윗 왕의 명을 받았지만, 웃사는 자기 집에 20년 동안이나 놓여 있던 법궤를 수레에 실어 편하게 끌고 가려 했다. 그러다 소들이 뛰어 수레가 넘어지려 하자 법궤를 잡으려고 손을 대었고, 결국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까? 여기서 법궤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한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은 내 생각이나 편리함을 내려놓고, 나를 부인하며 각자에게 맡겨진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십자가는 남이 대신 들어줄 수도 없고, 편리하게 수레에 실어 보낼 수도 없다. 온전히 내 어깨로 짊어지는 수고와 희생 없이는 결코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이 사건이 보여준다.
결국 영적인 제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내 고집을 내려놓고 침묵 속에 내 십자가를 짊어진 채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묵묵히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전히 내 자아와 의가 퍼렇게 살아 있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깊이 경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의 음성을 분별하고 들을 수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늘 문제가 되는 건 주님의 음성을 오해하거나, 내 좋을 대로 해석해서 전달하는 부분이다. '성령의 음성'이란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이들의 영을 열어 거저 부어주시는 은혜다. 이 음성은 꼭 귀로 들리는 육성으로만 찾아오지 않는다. 때로는 한 편의 그림이나 환상처럼, 때로는 마음에 새겨지는 글자나 성경 말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은은한 빛과 색깔, 스쳐 지나가는 바람, 혹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강렬한 직관과 느낌으로 역사할 때도 많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보고 들은 것에 인간적인 욕심이나 생각을 섞어서 남에게 전하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령의 음성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이름나고 영향력 있는 영적 리더라 할지라도,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소홀히 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 만약 그런 삶의 열매가 없는데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장담한다면, 한 번쯤은 경계하고 의심해 봐야 한다. 많은 경우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영적인 존재가 주는 유혹이나 자기 착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 이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겸손함을 지녔고, 영의 눈이 깨끗하게 열려 있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간절히 부르짖는 자에게 그 음성이 들려온다.
주님은 늘 겸손한 자를 찾아 제자로 부르신다. 겸손한 사람이야말로 자기 자랑을 내세우지 않고, 남들 앞에 서려고 설치지 않으며, 주님을 뒷전으로 밀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속적인 욕심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이들 중에서 그런 겸손함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주님은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미천해 보이는 자들을 불러 제자로 세우셨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일하시는 방식이다.
주님은 세상과 짝꿍처럼 지내는 이들 또한 제자로 부르지 않으신다. 도리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멈추지 않고 순종하며, 주님의 말씀 뒤를 겸손히 따르는 이들을 다듬어 제자로 삼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제자라 불리는 이들 중에서도 겉과 속이 다른 두 마음을 품는 이들이 나타나곤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픈 현실이다.
오늘도 이 차가운 새벽 공기를 뚫고 무릎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모든 영적 리더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자 했던 그 초심과 순수한 마음이 절대로 바래지 않기를 바란다.
매일의 삶 속에서 '나를 낮추는 연습'을 멈추지 말자. 비록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주님의 겸손을 다 따라가지 못해 허덕일지라도, 이 새벽에 다시 한번 그분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보자. 주님은 당신을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