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피터정 코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자라온 환경, 만난 사람들, 경험했던 실패와 성공은 우리의생각을 만들고, 그 생각은 선택을 만들며, 선택이 반복되면 결국 삶의 방향이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현실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나는 원래 이 정도야.”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어.”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환경이 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나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단순한 변화의 시대가 아니다.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전환의 시대다. 기술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인공지능과 디지털 혁명은 우리의 일과 관계와 생활방식을 바꾸고 있다. 정치와 경제는 불안하고, 사람들의 가치관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세상이 변하는 것만이 아니다.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이렇게 묻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행복한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물론 필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것이 옳은가?” “나는 누구의 뜻을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혼돈의 시대일수록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를 갖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그 정보를 해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오늘의 시대를 보여주는 수많은 단어들이 있다. 

인공지능, SNS, 1인 가구, N포 세대, 청년 실업, 재택근무, 팬데믹, 젠더 이슈,스마트시티, 전자화폐, 플랫폼 경제…. 이것들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시대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를 읽어야 한다. 그러나 시대를 읽는 것과 시대에 끌려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 시대를 잘 이해해야 하지만 시대의 가치에 지배받아서는 안 된다.

로마서 12장 2절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말씀한다. 이것이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다. 세상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 세상의 흐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방향을 찾는 것이다.

특히 지금의 젊은 세대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와 기술을 접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가 많다고 방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목소리를 듣다 보면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잃어버릴 수 있다. 빅테크와 플랫폼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에관심을 가질지를 끊임없이 제안한다. 우리가 클릭하는 것, 보는 것, 좋아하는 것이 다시 우리의 관심과 생각을 만든다. 그래서오늘날의 영적 싸움은 단순히 “무엇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나의 생각을 만들고 있는가?”의 문제다.


여기에서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쓰고 있는 ‘안경’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두려움이라는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위험해 보인다. 실패라는 안경을 쓰면 모든 길이 막혀 보인다. 비교라는 안경을 쓰면 나에게 없는 것만 보인다. 그러나 믿음의 안경을 쓰면 같은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가능성이 보인다.

열왕기하 6장에서 아람 군대가 도단성을 둘러싸자 엘리사의 사환은 두려워했다. 그가 본 것은 적군뿐이었다. 그러나 엘리사는달랐다. 그는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그들과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상황을 바꾸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먼저 그의 눈을 열어 주셨다. 눈이 열리자 같은 장소가 전혀다르게 보였다. 적군만 보이던 자리에서 하나님의 군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지금 눈앞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길을만들고 계시지 않은 것도 아니다. 지금 실패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실패자로 규정하신 것도 아니다. 사람이 보는 것과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다르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여, 지금 자신의 환경만 바라보지 말라. 과거의 실패만 바라보지 말라. 다른 사람의 성공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지 말라.

하나님이 당신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를 보라.

당신의 인생을 가로막는 것은 때로 환경이 아니라 환경을 바라보는 당신의 생각일 수 있다. 그래서 변화는 환경보다 먼저 인식에서 시작된다. 생각이 바뀌면 선택이 바뀌고, 선택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며, 행동이 반복되면 삶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성경적 세계관은 성경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다. 세상이 옳다고 말한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하나님의 기준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세워야 한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셨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은 베드로의 능력을 먼저 묻지 않으셨다. 성공을 묻지도 않으셨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도 않으셨다. 먼저 사랑을 물으셨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똑같이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네가 성공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사람들의 인정받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원하는 미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가진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한다.

마태복음 26장의 한 여인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드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그녀의 헌신을귀하게 보셨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렸다. 믿음은 언젠가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주신 기회를 붙드는 것이다.

젊음도 기회다. 시간도 기회다. 재능도 기회다. 관계도 기회다. 지금의 자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일 수 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말라.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해서 주저앉지 말라. 하나님의 사람은 시대의 파도에 떠밀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시대를 헤쳐 나가는 사람이다.

혼돈이 클수록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세상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하나님의 음성을 더 가까이 들어야 한다. 변화가 빠를수록 말씀에 더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그리고 눈앞의 현실이 아무리 거대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대를 직시하라. 그러나 시대를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을 바라보되 세상의 기준으로 살지 말라.
현실을 직시하되 현실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리고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그 질문 앞에 서라.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제 우리의 대답은 말이 아니라 삶이어야 한다. 우리의 시간으로, 우리의 선택으로, 우리의 꿈으로, 우리의 재능으로, 우리의헌신으로 대답해야 한다.

주님, 제가 시대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 제 눈을 열어 주셔서 내가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일을 보게 하소서.

그때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문제가 사라져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기 때문에 승리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