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피리에 춤추지 않는 청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 누가복음 7:32
오늘날 우리는 대중문화의 거대한 스펙타클 속에서 살고 있다. 빌보드 차트를 휩쓰는 슈퍼스타들의 화려한 무대와 폭발적인 환호는 마치 인간이 영원한 성공을 거머쥔 것처럼 우리를 현혹한다. 그러나 모든 조명이 꺼지고 난 뒤, 그 성공의 탑은 결국 시간 속에 썩어 없어질 모래성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리더십 코치로서 나는 청년들에게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과연 이 땅에서 세상이 인정해 주는 일시적인 ‘이름 남김’을 좇을 것인가, 아니면 십자가 앞에서 ‘이름 없음’의 은혜를 배울 것인가?"
사실 세상이 부추기고 있는 '성공의 문턱'은 실상 크리스천의 영적인 눈으로 보면 '영혼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세상이 감추어둔 영적 사기술을 직면하고, 성령으로 세례받은 자가 걸어야 할 진짜 생명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세상은 트렌드의 최전선에 서서 대중의 박수를 받는 삶을 ‘성공한 인생’이라 칭송하고 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가 걸었던 그 길은 어떠했는가? 그는 온갖 영광을 비우고 가장 낮은 말구유와 저주받은 십자가로 향한 철저한 낮아짐의 길을 순종하며 걸어가셨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과 복음의 결정적인 갈림길이 갈라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길은 ‘자기 이름’을 증명하기 위한 쉼 없는 발버둥인 반면, 복음의 길은 ‘자기 부인’과 ‘자기 의의 파산’을 통과한다는 점이다.
누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시장 바닥에서 노는 아이들의 비유를 통해 이 세대의 실체를 폭로하고 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장터는 '번영의 피리'와 '공포의 애곡'이라는 두 가지 장단을 강요한다.
여기서 '번영의 피리'는 인간의 탐욕과 인정욕구를 자극하는 도구이다. 경제적 호황이나 사회적 성취의 시즌이 오면 세상은 마치 이것이 영원한 낙원인 것처럼 흥겨운 피리를 불어댄다. 사람들은 그 리듬에 맞춰 밤낮없이 스펙을 쌓고, 타인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경쟁의 광장으로 뛰어든다.
이처럼 번영의 피리가 욕망을 자극한다면, '공포의 애곡'은 인간의 근원적인 두려움을 마비시키고 조종하고 있다. 경제 위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사회적 재난이나 개인적 좌절이 닥칠 때 세상은 온통 장례식장처럼 울부짖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번영의 피리'와 '공포의 애곡'이 거리를 뒤덮을 때, 세상은 세례 요한의 외침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도 모두 철저히 거부해 버린다. 결국 그들이 거부하는 것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거짓 자아와 자기 의를 부수어 버리는 참된 회개와 진정한 은혜 그 자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떠한 이들인가?
그들은 세상이 불어대는 이 이중의 장단, 즉 헛된 '성공의 피리'와 '절망의 애곡'에 영혼의 주파수를 맞추지 않는 이들이다. 하나님을 내 야망 성취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이 영적 사기술을 깨뜨리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세상의 피리에 맞춰 춤추다 쓰러지는 광대 신세를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에 사로잡힌 이들만이 이 거대한 장터의 연극판을 간파하고, 세상의 춤사위에서 완전히 걸어나올 수 있다.
고린도후서 6장 14절을 보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과 같은 멍에를 메고멸망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없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혁명이다.
세상의 가치관이라는 거대한 중력이 우리를 아래로 끌어내리려 할 때, 성령으로 세례받은 자는 위로부터 임하는 은혜의 부력으로 그 중력을 거스른다. 세상의 알고리즘과 트렌드의 노래에 맞춰 영혼의 춤사위를 바꾸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이 가진 거룩한 저항력이다.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고 서늘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눅 3:9). 진정한 회개란 내 힘으로 미래를 안전하게 포장하려던 모든 신앙적 방어기제를 철거해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삶에 이 거대한 도끼를 던지시는 이유는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허망한 자기 의의 구조물을 박살 내어 오직 하나님만 붙들게 하시려는 사랑의 폭격이다. 그렇기에 매일 마주하는 삶의 좌절 속에서 마스터플랜이 깨지고 스펙의 탑이 무너질 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세운 계획이 깨지고 내세울 만한 능력이 사라질 때, 그 순간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거짓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가 왕이 되시는 거룩한 은혜의 시간이 다가 온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 순간을 실패라 부르며 통곡하지만, 성도는 그 파괴의 자리에서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는 이들이다. 가짜 내가 죽을 때마다 부활의 생명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적 비밀'이 그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라고 선언하고 있다 (눅 7:35)의 지혜처럼, 세상은 탐욕으로 가득 차 결국 멸망으로 끝나게 마련인 것이다. 오직 성령이 임한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이 세상의 장터가 벌이는 연극판이 거침없는 폭로임을 알아듣는다.
오늘 이 시간, 세상의 화려한 장터에서 들려오는 온갖 유혹의 피리 소리를 귀에서 뽑아내길 바란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미련해 보일지라도, 성령의 세례 안에서 날마다 옛사람의 허망한 희망을 철거하며 부활의 소망으로 묵묵히 하늘을 향해 걸어가길 바란다. 세상의 피리에 맞추어 춤추던 발걸음을 완전히 멈추고, 오직 십자가의 좁은 길 위에서 진리의 부력으로 이 시대를 압도하는 진짜 청춘으로 의롭게 일어서기를 뜨겁게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