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26년 7월 1일, 밴쿠버의 거리에 예수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찬양하며 도시를 걸었고, 마지막에는 오펜하이머 파크에서 예배하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섬겼다. 행진 중 한 여성이 다가와 자신과 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어쩌면 그 순간이 그날의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수백 명이 모였다는 사실보다 한 사람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 자리에 기도할 사람이 있었다는 것. 결국 복음의 역사는 군중의 크기보다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밴쿠버의 거리를 걸었던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 가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과 올바른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바쁘게 움직이는 것과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다르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열심히 살아서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묻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어느 순간 목표를 이루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고, 성공을 지키는 것이 사명이 되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조용히 물으신다. “그것이 정말 네가 원하는 삶이냐?”

성경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다. 하나님께서 위치를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다. 그 질문은 아담이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직면하도록 만든 질문이었다. 코칭에서도 변화는 답을 듣는 순간보다 정확한 질문 앞에 자신을 세우는 순간 시작된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질문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가 처음 하나님께 받았던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얻기 위해 달려왔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진 것은 없는가?

우리는 인생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방향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맞다면 속도를 높여야 하지만, 방향이 틀렸다면 더 빨리 가는 것은 더 멀리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물어야 한다. “주님, 제가 지금 잘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습니까?”

March for Jesus가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은 거리로 나오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결정하라는 데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인생에 종교 하나를 더하는 것이 아니다. 내 계획을 하나님께 승인받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방향을 내려놓고, 때로는 이해되지 않아도 주님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말씀을 선택하는 것이며, 편안함보다 순종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시 묻는다. 예수님은 당신의 삶에서 정말 주인이신가? 아니면 내가 주인이고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 조력자처럼 되어 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해 달라고 요구하는 데 익숙한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묻는 데 익숙한가? 내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인가, 아니면 내가 세운 계획을 하나님께 이루어 달라는 기도인가?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 보자. 만약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한 가지를 내려놓으라고 하신다면, 나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명예인가, 돈인가, 인정인가, 관계인가, 통제하려는 욕심인가, 아니면 내가 오랫동안 '내 것'이라고 믿어온 어떤 꿈인가?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한 걸음 멈추라고 하신다면 나는 멈출 수 있는가? 반대로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길로 가라고 하신다면 나는 순종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뜨거워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선택이 달라진다. 돈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실패를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성공의 의미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삶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진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진짜 부흥은 예배당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배가 끝난 월요일의 선택에서 증명된다.

그날 밴쿠버에서 한 여성이 기도를 요청했던 것처럼, 우리의 일상에도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우리의 말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우리가 먼저 내미는 손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위해 기도해 줄 한 사람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바빠서 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깊이 만난 사람에게는 이상한 변화가 일어난다.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귀찮았던 사람이 영혼으로 보이고, 경쟁자였던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이며,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해서도 기도할 여지가 생긴다. 성령은 우리의 환경보다 먼저 우리의 시선을 바꾸신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단순히 “하나님, 나를 축복해 주세요”가 아니다. “하나님, 나를 깨워 주세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보게 해 달라고.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 보게 해 달라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보게 해 달라고.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지 보게 해 달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듣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March for Jesus의 행진은 끝났다.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진짜 행진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직장으로 돌아가고, 가정으로 돌아가고,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정직을 선택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사랑을 선택하고, 두려워도 복음을 선택하고,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예수와 함께 걷는 삶이다.

그날 밴쿠버의 거리를 걸었던 사람들의 발걸음은 멈췄지만, 그들이 던진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다.
“그 예수님이 당신의 삶에서는 정말 주인이신가?”
오늘 하나님 앞에 잠시 멈추자.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삶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같은 방향인가?
내가 붙잡고 있는 것 중 하나님보다 더 소중해진 것은 없는가?
내가 미루고 있는 순종은 무엇인가?
내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리고 싶어 하시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가장 먼저 바꾸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 앞에서 도망치지 말자. 답을 서둘러 만들지도 말자. 하나님 앞에 머물자. 침묵 속에서 기다리자. 그리고 그분의 음성이 들려올 때, 다시 한 걸음을 내딛자.

행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나를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자. 교회를 깨우기 전에 내 영혼을 깨워 달라고 기도하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 전에 내가 먼저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하자.

“주님, 제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십시오.
제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본 것을 따라 살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삶에서도
March for Jesus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