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땅에서 피어날 질문의 꽃
솔직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혹은 사역을 오래할수록 확실히 말을 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때는 누구보다 분명하게 방향을 제시했고,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구조를 짜며 사람들을 훈련시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확신하게 된점은, 리더는 모든 것을 완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가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여백을 열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왜 그렇게 사역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누군가의 방향이나 방법을 끝내고자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렇다. 나는 더 이상 시스템이나 성과를 남기려 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질문 하나가 이 세대의 예배 속에 남아, 다음 세대가 그 질문을 통해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기를 바란다.
많은 질문들 중에서, “당신은 지금 누구의 음성을 따라 살고 있느냐?”는 질문은 나의 사역 끝자락에 남기고 싶은언어다. 언젠가 내 이름은 잊혀질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이 어느 누군가의 기도 속에서 다시 떠오른다면, 그것이야 말로 내가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땅으로 부름을 받고 있다. 그곳은 멕시코의 외곽 도시도 있고, 몽골의 광활한 초원 근처도 있다. 물론 내게는 그곳의 언어를 잘 알지 못하고 또한 문화적 장벽이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걱정과 염려는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도 질문은 통할 것이라는 것을. 질문은 언어보다 먼저 다가가고, 논리보다 깊이 파고들며, 하나님의 음성을 준비하게 한다는 것을. 나는 거기서도 살아있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대답을 요구하지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령께서 일하실 공간을 열어드리기 위해서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부르심 속에 서 있습니까?” 이 질문 하나가 그 땅의 또 다른 예배를 깨우고, 또 다른 리더를일으키고, 또 다른 세대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곳으로 간다. 이처럼 질문은 어디서든 피어날 것이다.사람의 마음이 있는 곳, 하나님의 뜻이 기다리는 곳, 아직 말로 다 풀리지 않은 갈망이 꿈틀대는 그 자리에서—질문은 꽃처럼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른 아침인 지금, 차를 몰고 또 다른 마음 밭에 질문의 씨앗을 심으러 간다.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나의발걸음도 언젠가는 멈출 것이다. 그러나 내가 던진 질문은 멈추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자리를 떠나도, 그 질문은그 땅에 남아 사람들의 내면을 흔들고,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내가 코칭 리더로서 마지막까지 붙들고싶은 언어다. 물론 그것이, 내가 선택한 사역의 방식이기도 하다.
하늘의 언어를 전달하는 사람
스스로에게 자주 이런 말은 한다. “나는 하늘로부터 받은 질문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이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오랜 시간 땀과 눈물로 걷고 무릎 꿇은 현장에서 하나님께 배운 삶의 고백이다. 호주에서는 회복되지 않은 눈물 속에서 질문을 던졌고, 우간다의 붉은 흙 길 위에서는 아무 대답 없이 침묵만을 건넸다. 말은 시대를 타지만, 질문은 시대를 초월한다는것을 나는 그곳에서 배웠다. 전략은 조직을 남기지만, 질문은 사람을 일으킨다. 지시는 시스템을 움직이지만, 질문은 영혼을깨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확신한다. 질문은 하나님의 언어라는 사실을.
이제 내 발걸음은 또 다른 땅, 일본과 탄자니아를 향할 것 같다. 곧 그 땅의 영적리더들을 만나러 간다. 아직은 그들의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지만, 마음은 벌써 그들을 향해 있다. 그곳을 생각할 때마다 그 마을의 풍경을 수채화처럼 마음에그려본다. 넓게 펼쳐진 초원, 어둑한 예배당 안에서 들리는 성경 말씀 , 먼지를 뒤집어쓴 채 열정적으로 찬양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속에서 어떤 이가 조용히 다가와 나에게 묻지 않아도 나는 느낄 것이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질문하고 있다는것을.
나는 그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건넬 것이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음성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그가 바로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 질문이 그의 기도 중에 다시 떠오르고, 설교 중에 되새겨지고, 혼자 있는 새벽에 그의 마음을 흔든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던진 질문이 성령의 시간 속에서 여전히 심장을두드리고 있다면, 그 질문은 지금도 살아 있는 것이다.
나의 마지막 언어는, 사실 하나님의 첫 번째 언어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지금도 살아 있다. 탄자니아의 어느 작은마을, 고요한 아침기도 속에서, 누군가 다시 하나님을 찾는 바로 그 순간—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던졌던 그 질문하나가 또 다시 울리고 있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사라져도 좋다. 그러나 그 질문은 남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다시 그 질문을 품고 길을 떠난다. 질문은 나의 언어이자,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