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에서 시작된 여정

                  북미 문화에서 ‘리더’란 보통 앞에 서는 사람을 의미한다. 누구보다 먼저 말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무대 위에서 메시지를 선포하는 존재. 특히 시애틀이나 밴쿠버와 같은 다문화 도시에서는, 리더십이란 단지 조직을 이끄는 기술을 넘어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신뢰를 얻는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이민 사회 안에서도, 앞장서서 끌고 가는 리더가능력 있는 리더로 간주된다.

                  나 역시 오랜 시간 그 무대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리더십 훈련, 전략 강의, 코칭 워크숍… 늘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그들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달랐다. 밴쿠버의 한 세미나에서 그는 강단에 서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 사이에 앉아조용히 그들의 숨소리를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단지 마음이 그렇게 움직였을 뿐이었다.

                  나를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다가 온 한 중년의 신사분과 잠시 이야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 도중에 나는 한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요즘 당신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질문은 단순했다. 그러나 그 질문은 정곡을찔렀다. 바로 내 앞에서 중년의 한 리더가 그 자리에서 눈물을 보였다. 아무도 그 눈물을 예상하지 못했다. 가정과 교회 사이에서 찢겨진 내면, 이민자로서의 고립감, 영적 리더로서의 무력감과 죄책감이 그 질문 하나에 몰려왔다. 그는 자신이 여태껏 붙들고 있었던 것들이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 어떤 프로그램도, 그 어떤 전략도 위로하지 못했던 내면의 균열이, 작은 질문 하나에 드러났다.

A computer on a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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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질문 하나가 누군가에게 가장 큰 위로를 전할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침묵을 선택했고, 해결책 대신 기도를 건넸다. 그리고 조용히 그 리더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누가 코치인지 혹은 누가 리더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다만 우리 둘 사이에 하나님만 계셨다.

                  그 이후 한 동안 나는 그 리더분의 이야기를 꾸준히 들었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영역까지 기억했고, 감정의 결을따라 함께 걸었으며, 동시에 그 분의 삶을 함께 해석하고 재구성까지 도왔다. 그때부터 나는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질문은 단지 정보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성령께서 역사하실 ‘거룩한 틈’이라는 것을.

                  그날 나는 북미식 리더십의 전형적인 공식에서 한 걸음 비껴 섰다. 앞에 서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질문으로 사람의 마음을 여는 길을 택했다. 말보다 귀를 여는 그 자세가, 오히려 가장 강력한 리더십임을 그는 배우고 있었다. 그날 나는  “리더는 앞에 서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들어주는 사람입니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문화 그리고 질문의 언어

                  한여름의 필리핀, 마닐라 외곽. 열기는 대지 위를 내리꽂았고, 거리엔 자동차와 버스 그리고 오토바이 엔진 소리와사람들의 웃음, 그리고 가끔씩 들려오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섞여 있었다. 그 뜨거운 공기 속에서, 청소년 리더십 집회가 오전부터 시작되었다.

A group of people in a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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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뜨거웠던 마닐라에서의 청년리더십


                  그들은 대부분 도시 빈민가에서 온 아이들이었다. 평소에 하루에 풍성한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땀에 젖은셔츠를 입고 지내야 했던 이들에게, 오늘과도 같은 리더십 집회는 여러 면에서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 “너의 비전은 무엇이니?”라고 묻는 것은 너무 먼 질문 같았다. 꿈을 꾸기엔 현실이 너무 빡빡했고, 내일을 상상하기엔 오늘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전략이나 미래, 계획 같은 단어들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 하나님 앞에서의 진심을 묻기로 했다.

“여러분들은 오늘, 하나님께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나요?”

                  아이들은 침묵했다. 선풍기도 없던 공간에, 바람보다 고요가 먼저 감돌았다. 누군가 먼저 말하길 기다리는 듯,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그 정적을 뚫고, 조용한 목소리 하나가 울렸다. 작은 체구의 소녀가 떨리는 영어로 말했다.

당신처럼 나도 그곳에서 삶을 꾸려갈 수 있을까요?( “Do you think I could make a life there, like you do?”) 그 소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날카롭고 정직했다. 나는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무거운 진실이었고, 깊은 고통의 숨소리와도 같았다.대답 대신에 나는 그 질문을 하나님께로 가져갔다. 강단이 아니라, 기도의 자리에서. 마치 모세가 백성의 신음 소리를 들고 하나님께 올라갔던 것처럼, 나 또한 그 소녀의 질문을 품에 안고 강단에 서야 만 했다.

                  뜨거운 예배를 마치고 나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 질문을 꼭 붙들고 살아가렴. 그건 하나님이 너를 부르신 증거란다. 하나님은 그 질문을 통해 너에게 다가가실 거야.” 그 말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그의 인생을단단히 붙잡아 줄 것이다. 이렇게 나는 꿈을 강요하는 대신, 질문할 수 있는 권리를 전해주었다.

                  그날 좀 더 깊이 깨달은 것이 있다. 때론 리더가 해야 할 일이 대답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거룩하게 지켜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 아이의 마음에 심긴 질문은 곧 하나님의 초대였고, 그곳에 성령께서 일하실 공간이 생겨난 것이었기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그는 종종 이런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내가 누군가의 질문을 흘려 보내지 않게 하소서. 그 질문을 통해 주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