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사무엘 즈웨머 선교사님이 아라비아반도 걸프지역에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 당시 아라비아반도는 7세기에 이슬람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기독교가 급속히 사라지고 복음의 빛이 꺼진 상태로 1,200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사무엘 즈웨머 선교사님으로부터 2022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걸프지역은 아직까지도 현지인 교회가없는, 공식적으로 현지인 100% 무슬림으로 기록되는 나라다.

공산권과 이슬람 지역의 선교사들은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기때문에 ‘잠복근무’라고 한다. 하지만 걸프지역을 제외한다른 중동지역인 레반트(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의 지역), 북아프리카(이집트, 튀니지, 수단, 에티오피아, 알제리, 니제르, 수단) 지역, 아시아(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등) 지역은 이슬람 국가라고 해도 현지인 교회가 있기 때문에 그들과 협력해서 버디 코칭 스쿨은 사역이 진행되고 있고, 최근 난민을 대상으로 많은 열매를 맺고 있다. 

하지만 석유 개발을 통해 막대한 오일 머니(oil money)의 파워를 가지고 있는 아라비아반도에 위치한 6개 GCC(Gulf Cooperation Council, 걸프협력회의)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오만에서는 NGO활동도 할 수 없고, 난민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일꾼들 안에 사역하기에 힘든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다른 중동과 이슬람 지역과는 너무나 다른 지역이다. 더군다나 걸프지역에 대한 한국의 선교 역사는 대략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기에 40년 가까이 되는 다른 중동지역에 비해 사역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힘들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한 도시는 모든 통신과 전파를 감시하는 역할을 할 목적으로 세워졌다. 그 정도로 걸프 국가들은 감시와 통제가 강력하다. 걸프지역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수니파의 중심지이고,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핸드폰이 도청을 당하고, 우리의 위치가 이맘(이슬람 종교지도자)들에게 실시간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에 보안 용어를 사용하거나 각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쫓겨나기 쉽다. 

실제로 기도편지를 해킹 당해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사례가 있다. 내가 쫓겨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나로 인해 다른 선교사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보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거짓된 분위기에 나는 계속해서 속고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지역에 있다 보니 한국에서 사역 중심의 분주한 삶을 살아온 나 같은 한국 선교사들은 스스로 좌절하고,패배주의에 젖어 자주 영적 침체기에 빠져들곤 한다.

그런데 7세기 이후 지금까지 1,500년 가까이 어둠에 묶여 있는 이 땅에 최초로 복음을 들고 들어온 사무엘 즈웨머 선교사님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캄캄한 밤에 강도의 위협을 무릅쓴 채 낙타를 타고 광범위한 걸프지역을 순회하며 부족의 텐트들이 잘 보이는 모래언덕에 올라가 이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곤 하셨다. 그리고 그가 기도했던 장소는 바레인의 메이슨 기념병원, 아랍에미리트 아즈만의 사라 호스만 병원, 알아인의 오아 시스 병원(현재는 캐나다 병원), 푸자이라의 Maternity 병원, 샤르자의 사라 호스만 병원, 국립복음주의 교회로 오만의 소하르와 살랄라의 종교 부지의 교회가 되었다.

단 한 사람!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한 간절하고 간곡한 중보기도를 통해 걸프지역을 덮고 있던 거짓과 죽음의 짙은 어둠이 걷히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졌다. 간절한 마음으로 올린 그의 간곡한 중보기도를 통해 생명이시고 빛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이스마엘 자손을 향한 약속(이사야 60장 7절)의 말씀을 이루어가시는 것을 이 땅에 순종하여 들어온 모든 하나님의 종들에게 이미보여주고 계셨다. 그런데 나는 현실이라는 혹독한 환경에 현혹되어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GCLA 오만 챕터 조갈렙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