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아주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일까지 이 땅의 현지인들의 대답은 가장 먼저 ‘인샤알라!’다. ‘신의 뜻이라면’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대답은 매우 거룩하고 신실해 보이지만, 아주 비겁한 이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공무원마저 이렇게 대답하니 이 땅에서 사업을 하는 나로서는 맨 처음에 너무나 힘들고, 갑갑하고, 스트레스 충만이었다. 그래서 처음 태권도 도장을 열 때 관공서를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백만 번씩 “주님! 주님!”만 외쳤다.
나의 갑갑함이 최고조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것은 2019년 12월 태권도 도장을 이 땅에 열면서부터다. 2019년 12월은 코로나가 전 세계에 확산되기 시작한 때다. 태권도 도장을 열고 두 달 뒤에 오만 정부의 강력한 봉쇄 조치로 태권도 도장을 비롯한 거의 모든 상점이 6개월 이상 문을 닫아야 했다. 그 이후 통행 제한 시간을 지정해줘서 낮에는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잠깐씩 배려해줬지만, 늦은 오후부터 태권도 수업을 할 수 있는 나에게는 태권도 도장을 계속 닫고 있으라는 명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태권도 도장을 오픈할 때 “왜 오만과 중동의 아이들을 위해 사업장을 여는데 한국에서 헌금을 모금해서 열려고 하느냐? 네게 있는 것으로 시작하라!”는 기도 응답에 순종하여 통장에 있는 전 재산을 올인하여 오픈했는데, 도장을 계속 닫고 있어야 했다. 오만 정부의 명령으로 도장을 쉬고 있어서 이번 기회에 현지인 친구라도 실컷 만나야겠다는 나의 생각도 통행 제한과 함께 ‘여러 사람이 만나는 것 금지!’라는 새로운 제한으로 인해 현지인 친구들도 못 만나게 되면서 나의 갑갑함은 극대화되어갔다.
그런데 결국 폭발하여 내 머리 꼭지가 돌아 나를 미치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7년 동안 온갖 정성을 쏟아 복음을 전했던 사랑하는 형제 아슈라프가 코로나로 인해 3일 만에 손도 못 써보고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선천적으로 ‘겸상적혈구성 빈혈’을 앓고 있던 그는 면역력이 약해 혹시라도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코로나에 감염되면 위험하기에 만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그렇게 그를 떠나보낸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고 며칠을 앓고 나서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혼자 길을 가다 보면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순간부터 내 마음에 화가 나서 마치 복수하듯이 복음을 닥치는 대로 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는 곳이면 오만 현지인이든 이 땅에 일하러 온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정말 닥치는 대로 전했다.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이렇게 쫓겨나든 저렇게 쫓겨나든 아무것도 안 하면 아슈라프처럼 죽어서 없어지는 인생인데 언제까지 나중에 나중에 할 것인가’ 하는 마음에 정말 미친듯이 전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붙기 시작한 이 불은 잠을 자다가도 한밤중에도 눈이 번쩍 떠지게 만들어서 새벽에 뛰쳐나가 마을, 마을 현지인 친구 집을 돌며 땅 밟기 기도를 시작하게 했다. 나중에는 우리 동네에서 옆 동네로, 옆 동네에서 마을이 다 보이는 모래언덕으로, 그리고 모래언덕에서 내가 사는 브레이미 도시 전체를 자동차로 여기고 돌며 기도하게 했다. 그렇게 시작된 땅 밟기 기도는 결국 오만 전국을 한 바퀴 돌게 했다.
그렇게 오만 전국을 돌고 나서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다시 태권도 도장 문을 열고 도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을 때, 버디 코칭을 만나게 되었다. 2020년 10월 11일 버디 코칭 1기로 새벽 4시 다소 이른 시간에 참여하기 시작한 버디 코칭은 마치 성경 말씀 속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것 같은 천국 기쁨을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너무 좋아서 이 지역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소개하고 내가 아는 분들에게도 소개하기 시작했다.
버디 코칭을 수료하고 ACM이 되기 위해 첫 실습 상대로 만난 장감우 사범님께 “코칭을한마디로 설명하신다면 어떻게 이야기하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이렇게 대답하셨다. "코칭은 마치 발화점 같습니다. 물이 99℃까지 아무리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어도 나머지 1℃가 채워지지 않으면 끓지 않습니다. 그런데 코칭은 내가 에너지를 폭발하게 해서 쏟아내게 하는 마지막 1℃ 같은 발화점입니다.”
맨 처음 GROW 모델을 중심으로 정말 어설프기만 한 나의 초창기 코칭을 받았던 장감우 사범님은 나와의 코칭 이후 갑자기 변화됐다고 장 사범님의 사모님이 전해주었다. “도대체 40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이 하루 아침에 저렇게 바뀌나요?” 너무나 감사한 것은 십대에 접어들어 아빠를 이유 없이 멀리하기 시작해서 서운함을 팍팍 안겨주던 사랑하는 딸이 이 모습을 보고 나에게 코칭을 해달라고 먼저 다가온 순간이었다.
사랑하는 딸에게서 “아빠는 코칭에 달란트가 보인다”는 칭찬은 나에게 또 한번의 천국 기쁨을 맛보게 해주었다. 그런데 오만에는 내가 코칭 실습을 하고 코칭을 권면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전부 해야 2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분들에게 코칭을 소개하고, 이분들 중에서 80% 가까이 버디 코칭에 참여하셨다. 더 이상 실습을 할 수 없게 되자 나 스스로 셀프 코칭을 많이 하게 되었다. 특히 태권도를 통해 문화 사역을 하는 나로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태권도 선교 사역을 하시는 나진영 선생님으로부터 나만의 태권도 선교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코칭을 받고 나서 계속해서 고민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사랑 태권도’라는 나만의 태권도 선교 교육 철학을 놓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 즈음에 GCLA의 귀한 헌신과 섬김으로 역량강화 강의를 통해 크리스천 코칭에 대해 알게 되었다. 크리스천 코칭 질문 중에 “이런 당신은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입니까?” 또는 “그런 당신을 하나님이 어떻게 바라보시겠습니까?”라는 존재질문이 내 중심에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
‘나는 어떤 존재로 이 땅에 살고 있나? 나는 날마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인가? 내가 불붙은 사람처럼 미쳐서 날뛰듯이 복음에 미쳐서 살아가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나?’ 라는 의미질문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 중에 엘리사의 사환이 영적인 눈이 열려 하늘 군대를 볼 수 있게 된 것 같이 이사야 60장 7절이 말씀이 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무술을 삶의 중심으로 하는 무도인의 입장에서 표현하면 마침내 자신만의 무술에 ‘각성’하게 된 것이다.
무도인이 각성하게 되면 자신만의 고유한 기술이 몸에 스며들어 무의식적으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 “또 게달의 양 떼가 네게로 함께 모이며 느바욧의 숫양들이 너를 섬기고 그것들이 내 제단에 오르리니 내가 그것들을 받고 또 내 영광의 집을 영화롭게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