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을 통해 이스마엘을 향한 이 약속의 말씀으로 각성이 일어났다. 처음 언급했던 사무엘 즈웨머 선교사님은 의료 선교사로 이 땅의 수많은 현지인을 살려내셨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사랑하는 어린 두 딸을 일주일 간격으로 손도 못 써보고 이 땅에서 잃고 말았다. 그 이후 사랑하는 아내마저 이 땅에 순교의 씨앗으로 심으셨지만 그의 한평생을 아랍의 영혼들, 이스마엘후손들의 구원을 위해 헌신하셨다.
사무엘 즈웨머 선교사님은 사랑하는 딸과 아내의 순교 이후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고통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영광이 아닌가?”라는 말씀을 남겼다. 어떻게 저것이 가능할까? 사무엘 즈웨머 선교사님 개인의 일로 이사야 60장 7절의 말씀을 붙들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도 약속의 말씀에 각성이 일어나 앞으로 일어날 일이지만 이미 일어난 일로 그 약속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시므로 시간의 창조자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과 같이 크로노스의 시간에 속해 있지 않고 카이로스의 시간, 즉 하나님의 때에 머물고 계신다. 즉 하나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한 시점이다. 그런 하나님의 카이로스가 열리는 것이 바로 각성이 일어나는 때다.
이미 약속으로 주신 이사야 60장 7절의 말씀은 강력한 보증인이신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질 것을 보증해주셨기에 이미 일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각성이 일어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진 사람 앞에는 어떤 인간적인 고통이나 어려움도 그저 지나가는 추억에 불과하다. 그래서 고통과 어려움을 맞이하는 자세 또한 불안과 염려가 아닌 앞으로 일어날 기막힌 역전승을 기다리는 기대와 기쁨이 된다.
인간적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장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과 고난이 클수록 더 큰 기쁨과 선물이 될 뿐이다. 아무리 사단이 겁을 주고 고통을 줘도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골리앗 앞에 조약돌 몇 개 들고 나아가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예수님께 제대로 미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천 명의 뒤를 쫓으리니 이는 {주} 너희 [하나님] 바로 그분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기 때문이니라.” 여호수아 23장 10절
코칭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각성이 일어난 때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적들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다. 가장 감사하고 기쁜 것은 나의 욕구불만처럼 터져 나온 이기적인 복음 전파가 이제는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복음 전파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상,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데 쓰임 받는 아브라함 같은 복의 통로로 살아지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의 약속을 주신 것과 같이 나에게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 같은 단어가 있다. 무제한! Unlimited! “또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장 51절
마지막으로 나에게 크리스천 코칭을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크리스천 코칭은 천국을 볼 수 있도록 각성하게 만드는 밭에 감추인 보화와같다”고 표현하겠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모든 존재를 걸고 반드시 사야만 하는 내 인생에 복음과 같은 절대 가치다.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열왕기하 6장 17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