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이 오는 길목이었다. 햇살은 점점 따스해지고, 그늘 아래 스며드는 바람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창밖의 나뭇잎은 짙은 초록으로 깊어졌고, 마음속에도 새로운 계절이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도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교재를 펼쳤다. 코칭 수업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언제나 나를 낮추고, 다시 시작하게 만든다. 한 장, 또 한 장 넘기던 중 문득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바로“질문은 상대의 내면을 향한 초대이다”라는 짧고 간결하지만, 그 문장 하나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림을 만들었다.
요즘처럼 많은 말을 해오던 때는 없었다. 언제나처럼 사역은 늘 바빴고, 만나는 이들의 고민은 깊어졌으며, 대답해야 할 질문은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그 문장은 내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말을 멈춰도 괜찮다고, 묻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고.
솔직히 코칭을 처음 시작했을 때 사실 큰 기대는 없었다. 다만 목회자로서 성도들과 더 좋은 방식으로연결되고 싶었다. 캐나다에 본부를 둔 GCLA의 국제대표로 섬기는 피터정 코치와의 교재가 있었기에 이를 기회로 삼아 벌써 초보 코치자격증은 물론이고 프로코치가 되기 위해 열심으로 달려가고 있다.

새로운 대화법과 통찰력을 키우는 코칭 수업
기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말보다 질문이 깊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날도그저 코칭 수업을 따라가는 데 집중했고, 아직은 프로답지 않은 냄새를 풍기는 중이었다. 그때 마치 내게도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면의 작은 목소리가 계속해서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조금 뒤 수업 중에 피터정 코치가 조용히 물었다. “코칭을 배우시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질문은 조용했지만 정중했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심이 느껴졌다.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가 말문이 막혔다. 이유를 설명하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감정이 올라왔다. 왜 그토록 바쁜 와중에도 이 수업에 오고 싶었는지를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단지 “사역을 좀 더 잘하고 싶어서요”라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쩌면 나는 성도들에게 정답을 주는 사람에서, 함께 길을 걸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목회는 늘 ‘대답’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하고,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제시해야 한다는 책임감 속에서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말을 했고, 많은 결론을 내렸고, 때로는 성도들의 고민을 너무 쉽게 정리해버리기도 했다. 상대의 입장에 서기보다는 목회자로서의 역할을 우선시했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거리감이나 미묘한 불편함에 대해서는 깊이 돌아보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코칭을 배우면서 가장 먼저 바뀐 것은 ‘듣는 태도’였다. 코칭에는 3대 핵심 요소가 있는데, 바로청취, 질문 그리고 피드백이다. 그중에서 코칭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청취’이다. 그것은 단지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일이었다. 말의 흐름 속에 있는 감정의 결을 따라가고, 그 말 뒤에 숨겨진 진짜 질문을 기다리는 일이었다. 그 변화는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점점 익숙하게 다가왔다. 마치 목회의처음 자리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교회의 한 청년이 생각났다. 직장 문제로 벌써 몇 주를 기도하며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했던바로 그 청년이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곧바로 연락했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만나서지금 배우고 있는 이 질문들을 그 청년에게도 물어보고 싶었다. 조용한 커피숍에서 그와 마주 앉은 나는 말을줄이고 귀를 열었다. “요즘 네 마음에 가장 무거운 단어는 뭐야?”, “그 단어가 너를 어떻게 붙잡고 있어?”, “하나님 앞에서 그 단어를 어떻게 놓고 싶니?” 짧은 질문들이었지만, 청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답변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이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덩치가 큰 청년이 우는 모습을 보고, 그 앞에서 나 역시말이 멈추었다. 눈물로 기도하는 듯한 그 청년 앞에서, 나는 어떤 가르침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느꼈다.
그날 이후, 나는 코칭이 단지 방법이나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코칭은 사람의 내면을향해 조심스레 걸어 들어가는 동행이며, 성령의 일하심을 방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인내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질문은 아마도 기다림의 언어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여전히 설교하고, 여전히 말씀을 전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더 많이 듣고, 더 조용히 묻는다. 마음이 열리는 순간은 종종 ‘말’이 아니라 ‘질문’으로 시작된다는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군가 내게 “열심히 배운 코칭이 목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길게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말하던 자리에서 듣는 자리로 옮겨졌을 뿐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자리가 훨씬 더 깊고 아름다워요.” 이처럼 작년 여름에 시작된 이 여정은 지금도 내 사역의 방향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덜 말하고, 더 듣고, 더 기다리는 자리. 질문이 만든 새로운 목회의 풍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