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보다 더 깊은 문을 열 수 있는 길
장례식장은 언제나 묵직한 공기가 감돈다. 사람들은 말을 아끼고, 마음은 자연스레 깊어진다. 그날도 그랬다. 전도사님의 부친 장례예배를 인도하고 있었고, 나는 평소처럼 순서에 따라 조심스레 예배를 마무리하고있었다.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제복을 입은 장의사였는데, 그가 찬송을 부르던 모습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단정한 외모보다 그 안에서 번지는 낯설지만 따뜻한 분위기가 이상하게장례식장의 공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뭔가 어긋나 있었고, 그래서 더 깊게 다가왔다.

코칭식 질문을 경험했던 순간들
식사 자리에서 나는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이곳에서 일하신 지 오래되셨나요?”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30년 가까이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바로 이어진 말이 내 마음을 붙잡았다. “사실은 제가 여기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짧은 문장 안에 수십 년의 갈등과 애환이 섞여 있었다. 나는 다시물었다. “혹시 어느 교회에 다니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그의 깊은 속내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신은 근처 교회의 집사로 봉사하며, 지금도 교회에서 성경공부반을 맡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전도사이고, 처남은 지방에서 목회를하고 있으며, 자신도 젊은 날 신학교를 다녔다는 말까지 이어졌다.
목회를 서원했던 사람. 그러나 현실의 무게와 생계의 책임 속에서 그 길을 접어두고 살아온 세월. 지금까지도 주일 출석이 어려울 때가 많고, 마음속에는 죄송함과 미련이 함께 남아 있다고 했다. 나는 그의 고백을들으며, 그 안에 잠든 부르심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목회자가 되겠다고 서원했던 젊은 날의 약속은 시간이흘러도 그의 마음을 완전히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지금 다시 그 길을 걷게 된다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고, 지금 이 일을 내려놓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 속에서 오랫동안 쌓여온 마음의 무게를 느꼈다. 헌신과 현실 사이에서 계속 서성이며 살아왔다는흔적이 그의 말에 스며 있었다.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는 일을 하면서도 마음의 허전함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작은 질문을 하나 건넸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하나님께 진지하게 다시 묻는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또는 오늘 당장 작정하고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 질문은 조심스러웠지만, 그의 표정이 환해지는 것을보았다. “좋습니다. 오늘 저녁에 기도제목을 적어두고, 내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결단은 간단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오랜 시간 쌓여 있던 내면의 무게가 질문 하나로 방향을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사람이 변하는 순간은 정답을 들었을 때가 아니라, 진심 어린 질문을 마주했을 때라는 것을. 후에 다시 만나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했지만, 그날의 대화는 내게아주 중요한 확신을 남겼다. 내가 질문을 선택하게 된 이유. 그것은 내 안에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답보다 더깊은 문을 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그 문은 다름 아닌 ‘질문’이라는 손잡이로 열리는 문이었다.
